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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우 지 움    BAUZIUM

땅과 공간을 주제로 하는 작업은 여러 장르가 있지만 그 중에서 건축은 더욱 땅에 밀착된 결과를 만든다.

풍토의 조건이 그 땅의 건축을 결정한다는 평범한 사실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다. 반도의 척추를 이루는 태백산맥 너머는 동과서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울산바위를 넘어온 높새바람과 동해를 건너온 해풍은 울창한 송림을 사방으로 헤집는다.

채소를 경작하던 5000여 평의 밭에 미술관을 일구는 작업은 우선 바람으로 시작된다. 히말라야의 바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곳 역시 바람은 일상을 지배한다. 각50평씩 세 동으로 구성된 건물을 담으로 이은 것은 나뉜 150평의 공간을 하나로 묶는 장치이고 또 그 사이에 바람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이다. 바람은 맞서기보다 함께하는 것이 편한 자연의 하나다.

‘바우지움’은 조각가인 주인의 컬렉션이 상설 전시되는 ‘근현대조각관’과 자신의 작품전시와 작업실을 겸하는 ‘김명숙조형관’ 그리고 특별전시와 큐레이터의 공간이 마련된 ‘별관’으로 이어진다. 10%의 건축으로 땅을 채우기 위해 펼친 공간은 모두 울산바위를 향한다. 비록 서향이지만 공간의 질서를 결정하는 항목에서 그것을 능가하는 조건은 따로 없다.

땅을 셋으로 나누고 물과 돌과 풀로 마당을 만들어 10년 넘게 가꾸어온 주인의 거주공간과 이어지게 한다. 결국 넷의 영역이 만들어진다. 울타리-담은 공간을 일으키는 주제가 된다. 길이와 높이가 다른 담을 여럿 세우고 겹치고 꺾이는 곳에 지붕을 얹어 집을 꾸민다. 담의 어딘가에 지붕이 있을 뿐 건물의 형태는 따로 없다. 조형을 담을 공간에서 건축은 나서지 않는다. 

매끈한 담이 아니라 허름한 담을 만든다. 거푸집에 돌을 깨어 넣고 콘크리트를 부으면 서로 얽혀 굳는다. 계획된 의도보다 물성과 경우의 수가 빚어낸 우연의 결과는 결국 필연으로 간다. 조각으로 나타나는 조형이 다듬어진 필연의 결과라면 건축은 그 반대의 과정을 시도한다. 내용에 봉사하는 방법이기도하지만 그런 명분이 아니어도 그것으로 그만이다.

허름한 담 안에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기 위해 쇠로 만든 틀을 걸친다. 담은 그저 담이지 벽이 아니다. 다만 겹쳐 보일 뿐이다. 방수와 단열을 갖춘 지붕과 벽은 자립해 벽에 기대고 있거나 떨어져 있다. 걸어야하는 그림과 달리 조각은 바닥에 노이는 것이니 벽은 자유다. 사이를 두어 빛을 들이고 창이 되어 안과 밖을 잇는 풍경을 만든다. 창에 비치는 수면에는 소나무와 울산바위가 바람과 함께 내려와 담긴다. 

땅이름 원암리元巖里는 말 그대로 바위를 깔고 앉아있다. 울산바위가 솟아오를 때 굴러 내렸을 누런 돌들이 야외 전시장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대관령 터널 공사장에서 걷어온 쇄석과 원암리의 돌덩이가 어울려 ‘돌의 정원’을 만들고 그래서 바위로 지은 미술관의 이름‘바우지움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 바람이 담의 돌 틈에 흙을 싣고 풀씨를 심어 초록을 피울 것이다. 그렇게 건축이 되려고 한다. 


                                                                                                                                                              아르키움    김 인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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